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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바겐쉼 터/잠깐 쉬며.. 2009. 9. 24. 21:51
딜(deal)과 바겐(bargain)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둘다 거래나 흥정을 뜻하는 말로
‘빅딜’과 ‘바겐세일’ 같은 용어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어쩌면 빅딜은 우리 경제의
뼈아픈 추억으로, 바겐세일은 싼값에 사는 기회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세상을 등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시절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빅딜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빼 들었다. 말 그대로 대규모 사업 부문의 기업 간 교환을
통한 교강도 구조조정 과정이었다. ‘DJ노믹스’는 재벌 개혁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명박대통령의 친기업, 실용주의 중심인 ‘MB노릭스’와는 근본적으로 노선이 달랐다.
DJ의 빅딜 정책은 지금에 와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난파위기에 처한 ‘한국호’를 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현대, 삼성, 대우, LG그룹 등에 큰 상처를 안긴 것도 사실이다.
그 여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때 국가 기반시설까지 쪼개서 팔려고 했던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딜과 바겐은 나라의 운명까지 죄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 미 대통령은 소련을 상대로
세계의 명운을 건 초강경 빅딜을 시도해 성사시킨 바 있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견원
지간이던 오나라와 월나라가 손을 잡았다 해서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고사성어까지
생겼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큰 빅딜은 아마도 나당 연합이 아닐까 한다. 신라는
삼국통일의 필요성으로 인해, 당나라는 ‘골칫덩어리’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싶어했던
열망이 맞아 떨어져 연합군을 만들었던 것이다. 엊그제 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북 핵폐기와 동시에 안전보장’ 내용을 담은 ‘그랜드 바겐’을 주창했다. 일괄 타결을
뜻하는 이 말은 원래 청와대에서 ‘원 샷 딜’로 표현했었다. 그런데 딜이 바겐으로 바뀐
것이다. 빅딜의 반기업적 의미를 의식해서였을까. 아니면 ‘원 샷'이라는 술 문화 이미
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혹은 그랜드(거창한)라는 단어가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빅딜이나 그랜드 바겐이나 단어만 바꿨을 뿐 의미상으로는 그게 그거 아닌가.
최원열 국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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