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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국산차는 드럼통
    쉼 터/자동차정보 2009. 9. 18. 11:45

     

     

    자체적으로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세계에서 몇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

    과 디자인력을 갖추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이지만, 그 최초는 정말이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50년대 즈음이었다. 전쟁 직후라 경제는 극도

    로 어려웠고, 기술력이 낙후한 것은 물론이며 전문 인력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

    대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기틀을 마련한 때다. 방법은 한국전쟁 후 폐차로 남아 있던 트럭, 지프,

     

    쓰리쿼터와 같은 군수용품과 미군으로부터 받은 차량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일명 ‘드럼통 차’라고

    불리는 최초의 국산차량, ‘시발’이 제작된 것은 1955년 8월이었다. 서울에서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 혜

    성, 순성 3형제와 국내 유일의 엔진 기술자였던 김영삼은 미군으로부터 받은 군용차의 엔진과 변속

     

    기, 차축 등의 부속품을 이용해 자동차를 제작했다. 여기에 드럼통으로 제작된 차체를 씌워 지프형

    승용차였던 ‘시(처음,始)발(필,發)’을 만든 것이다. 국산화율이 50%나 되어 긍지를 느끼게 했던 이

    차는 그러나 그 외장이 아주 튼튼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했던 것 같다. 드럼통을 망치로 펴서 차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그 외관이 투박하기 그지없다. 자동화가 무엇인지

    도 모르던 때에, 낙후한 장비로 일일이 수작업을 한 까닭에 표면이 매끈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시발’은 한 대 만드는데 무려 4개월이나 걸렸고, 8만 환이라는 당시로서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정작 이

     

    자랑스러운 첫 국산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드럼통 차량 ‘시발’의 발전은 그해 10월부

    터였다. 광복 10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최무성 씨는 한결 성능이 업그레이

    드된 ‘시발’을 출품, 최우수 상품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 결과 신문에 크게 대

     

    서특필 된 것은 물론이고 을지로입구에 있던 그의 천막 공장에는 드럼통 차였던 ‘시발’을 사려는 고

    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는 대통령상을 받은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1억 환 이상의 계약금

    을 손에 쥘 수 있었고, 그 돈으로 공장을 짓고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 양산 체제로 돌입 할 수 있었

     다. 이때부터 ‘시발’은 더 이상 드럼통 차가 아니었다.

                                                                                                                              기아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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