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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처음 시작해서 일 년은 가장 위험한 시기다. 운전의 위험을 제대로 알기 전에 운전하는 재미를 먼저 알아버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운전 경험이 일천해서 자동차가 순식간에 얼마나 위험해지는 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혈기
왕성한 청년이 세상을 다 아는 듯 노인의 지혜를 비웃으며 경망스럽게 행동하는 격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겨울을 서너 차례 지나게 되면 함부로 운전을 하지 않는다. 과속의 위험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무모한 운전
으로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때로는 경험으로 때로는 간접 경험으로, 사고 당사자로 혹은 목격자로, 혹은
사고를 낼 뻔한 상황을 겪으면서 운전자들은 점차 방어운전의 필요성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지혜로운 운전자가 되는 것이다.
재미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게 안전이다. 적어도 운전에서는 그렇다. 안전 운전을 몸에 익히고 난 후에야 소위 말하는 운전하는
재미를 알아야 제대로 된 순서다. 기아자동차 테스트 드라이버 출신으로 최고의 레이서로 시대를 풍미했던 박정룡 씨는
경주장에서는 폭풍처럼 겁 없이 질주한다. 하지만 일반 도로 위에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하게 운전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과속하는 법이 없다. 이는 대부분의 다른 레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핸들을 잡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일반 도로에서의 방어운전이다. 방어운전은 즉시 멈출 수 있게 운전하는 것을 말한다. 저속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운전 기술
이지만 과속을 하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게 바로 방어운전이다.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다가 즉시 서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속 100km의 속도는 초속으로 따지면 약 28m에 해당한다. 매 초당 28m를 달리는 것은 엄청난 속도다.
1톤이 넘는 쇳덩어리가 초속 28m로 달리는 것이 바로 자동차가 시속 100km로 달리는 상황이다.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시속 100km가 저속으로 느껴질 만큼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본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시간을 0.1초만 놓쳐도 몇 미터 차이가 나는데 그 몇 미터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 것이다. 방어운전은 서행이라고
해서 턱없이 낮은 속도로 달릴 필요는 없다. 대개 법정 속도를 준수하거나 10~20% 정도 낮은 속도면 무리가 없다. 학교 근처의
스쿨존에서 법이 정한 속도는 시속 30km다. 또한 편도 1차선 도로에서는 시속 60km, 2차선 이상 국도에서는 시속 80km로
제한하고 있다. 이 정도 속도에서는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으면 제동거리가 10~15m를 넘지 않는다. 브레이크와 타이어의
성능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법정 속도를 준수하거나 시속 5~10km 정도 조금 낮은 속도에서 방어
운전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도로가 젖어있거나 눈이 내려 미끄럽다면 속도를 법정 규정 속도의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게
안전하다. 제한 속도가 시속 80km 이상인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방어운전의 개념이 달라진다. 사람이 차와 섞여서 걷는
길에서는 즉시 설 수 있는 게 방어운전이지만 자동차만 달리는 전용도로에서는 가급적 빨리 설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역시
제한 속도를 지키면 무난하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즉시 서는 것 보다 시야를 넓고 멀리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 도로
앞의 상황을 미리 보고 대비하는 운전이 자동차 전용도로에서의 방어운전이다. 한 가지 운전자들이 명심할 것이 있다. 운전은
아무리 잘해야 50% 밖에 채울 수 없다. 나머지 50%는 함께 도로를 달리는 다른 운전자들이 채워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 혼자 운전 잘한다고 사고를 피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속수무책인 상대가 돌진해 오면 어쩔 수
없이 사고를 당해야 한다. 반대로 내 운전이 아무리 서툴러도 다른 운전자들이 운전을 잘하면 함께 잘 달릴 수 있다. 도로를
질주하며 운전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것은 함께 도로를 달리는 많은 운전자들이 운전을 더 잘해 문제 차를 피해주기 때문이다.
운전을 잘 한다고 뽐낼 일이 아니다. 내가 빨리 달릴 수 있게 배려해준 다른 차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기아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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