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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시열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6. 11:59

    님이 헤오시매 나는 전혀 미덧드니

    날 사랑하던 情을 뉘손 듸 옴기신고

    처엄에 믜시던 거시면 이대도록 셜오랴

                        ~송시열(宋時烈;1607~1689)~

    <해설>

    임이 특별히 생각하시므로 나는 그것을 전혀 믿고 있었더니 나를

    사랑하시던 그 정을 누구에게 지금은 옮기셨습니까? 처음에

    근본부터 사랑 받지 않던 것이라면 이처럼이야 슬플 것이 있으랴.


    ◈ 배경

    현종(顯宗;1641~1674)은 조선조 제 18대 왕으로서 휘는 연(棩)이요 자는 경직

    (景直)이라 하는데 효종의 장자였다. 그는 인조 27년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효종

    2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효종의 오직 하나뿐인 왕자로서 자질이 고명(高明)하고

     

    심성이 덕스러워 대신을 공경하였으며 백성을 사랑하여 선왕(先王)의 도를 잘 지

    켰다. 김우명(金佑明)은 자를 이정(以定)이라 하였는데 영의정 김육(金堉)의 아들

    이고 현종의 국구(國舅)엿다. 형님 김좌명(金佐明)은 자가 일정(一正)이고 호는 

     

    귀천(歸川)이었는데 인조 11년 사마(司馬)에 올랐고 동 2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

    원(承文院)에 속했고 사관으로 천거됐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현종 초 공조참판,

    현종 4년 공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그는 총명했고

     

    재주가 비상했으며 용모가 뛰어났는데 재정을 맡자 이서(吏胥)들이 할 일이 없었

    고 병판이 되자 무인들이 모두 경복(敬伏)햇다고 한다. 현종 13년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나자 충숙이라 시호하고 특별히 영의정에 추증했다. 아웅 우명은 인조

     

    20년 진사과에 들고 효종 10년 현종이 즉위하자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에 영돈

    녕부사가 되었다. 이때 종실 복창군(福昌君) 정(禎)과 복선군(福善君) 전(栴)이 효

    종과 현종의 총애를 입어 교만하기가 이를 데 없고 수시로 대궐에 출입하여 궁녀

     

    하고 음탕한 짓을 일삼는 등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더구나 왕위를

    엿보는 등 말할 수 없는 행패를 부렸으나 누구 한 사람 감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

    다. 이때 김우명은 현종 15년 “정과 전이 궁녀하고 교란(交亂)한다.”는 상소를 올

     

    렸다. 그러자 정과 전은 어정창(吳挺昌) 등과 남인 윤전, 허목 등을 시켜 우명을

    반격하여 그를 죄 주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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