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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구만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5. 20:40

    동창이 발갓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쇼 칠 아희는 여퇴 아니 니렷느냐

    재 너머 사래긴 바틀 언제 갈녀하느니

                      ~남구만(南九萬;1629~1711)~

    <해설>

    동창이 밝았느냐? 날이 다 새었는지 종달새가 우는구나, 소치는

    아이는 아직껏 아니 일어났느냐? 등 너머에 있는 이랑 긴 밭을

    언제나 갈려고 하느냐?


    ◈ 배경

    남구만은 본관이 의령이고 자는 운로(雲路)이고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이다. 동춘당 송준길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효종 7년 별시에 급제하여 관찰사, 도

    숭지, 대제학,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숙종 10년 우의정에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약천은 사람됨이 강직하여 직간(直諫)을 서슴치 않았고 인현왕후(仁顯王

    后) 폐비사건 때 그 불가함을 주장하다가 남해로 귀양을 갔다. 우암과 미수는 비

    록 당파를 달리했으나 서로 상대방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언젠가 우암이 심

     

    하게 체하고 거의 죽게 되었다. 우암은 아들을 불러 미수에게 가 약 처방을 얻어

    오라고 명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분부대로 미수에게 가서 약 처방을 써 주십시오,

    하고 말하자 미수는 씹어뱉듯이 “약은 무슨 약! 비상이라도 한 숟갈 먹으라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크게 분개하였다. 비상은 독약으로서 그것을 약으로 쓰라

    니 분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들이 씩씩거리며 그대로 우암에게 복명했더

    니 “미수가 그랬다면 틀림없겠지, 어서 비상을 가져 오너라” “아니, 그건...” “어서”

     

    우암의 호령에 아들은 비상을 갖다 드렸는데, 송시열은 이걸 먹고서 체한 것이 뚫

    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암은 아침 식정에 간장을 한 종지씩 먹는 버릇이 있었는

    데 미수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웬만한 약으로서는 간장에 찌들은 내장에

    효과가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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