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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충신의 시
    한 자/한시(한국) 2009. 4. 2. 19:43

    空山이 寂寞한듸 슬피 우는 저 杜鵑아

    蜀國興亡이 어제 오늘 아니여늘

    至今히 피나게 우러 남의 애를 긋나니

                      ~정충신(鄭忠信;1576~1636)~

    <해설>

    산이 적막하고 쓸쓸하기만 한데 슬피 우는 저 두견새야, 촉나라가

    망하고 흥한 것이 벌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지금까지 피나게

    울어서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애닯게 하느냐.


    ◈ 배경

    정충신은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원래 고

    려의 명장 후예인데, 고려가 멸망하자 광주(光州) 무등산 아래 살며 아버지는 아전

    이었다. 그리하여 만운은 광주목사인 권율(權慄)장군의 상노(床奴)로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목사의 장계를 의주까지 가져가는 큰 공을 세웠다. 의주에서 백사

    이항복의 신임을 얻고 학문을 익혔다. 그 뒤 무과에 급제하여 안주목사로 있었고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난을 평정 금남군(錦南君)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도

     

    활약했으며 향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충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광해군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관옥(冠玉) 김류(金鎏)와 묵제(黙齊) 이귀(李貴),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 군산(群山) 구굉(具宏), 계곡(谿谷) 당유(張維) 등이 반정(反政)을

     

    모의했다. 이때 원두표(元斗杓;1593~1664)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본관이 원주고

    자는 자건(子建)이요, 호는 탄수(灘叟)이다. 이때는 아직 젊고 팔팔한 나이였으며

    반장에 앞서 원로대신의 양해를 얻고자 여주에 은거하고 있는 오리 이원익을 찾

     

    아가서 의논을 하여 동의를 구하고 돌아오는 길 과천에서 포졸들에게 잡혔다. 갖

    은 고문을 받았으나 일체 모의사실을 자백하지 않았다. 마침내 한강 백사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었는데 집행관이 마지막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막걸리나 한사발

     

    마시고 싶다“ 원두표는 술을 받아 반쯤 마시자 그 대접으로 앞의 나졸의 얼굴을

    때리고 발길로 뒤에 서 있는 망나니를 걷어차 쓰러뜨리고 그대로 한강물에 뛰어

    들어 강바닥을 기다시피 하면서 죽음을 벗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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