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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풀기건 강/몸을 깨우자 2008. 10. 2. 20:15
어이 자네, 이것 좀 거들어 주게!"
상사로부터 거들어 달라는 말. 그럴싸한 부탁이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속뜻은 일을 하라는 지시라는 사실을. 증권사 신입사원 이민주(28) 씨의 저녁은
그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갖가지 지시에도 꿋꿋이 견딜 수 있는 비법이 있다.
바로 '키보드 부수기'.이 씨가 키보드를 부순 것은 3년 전 대학 시절부터 친구와
말다툼을 하던 이 씨는 화가 나 동아리방에 있던 낡은 키보드를 주먹으로 부쉈고
키보드 안의 키가 와장창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 그 후 화가 날 때마다 이 씨는 인터넷에서 개당 7000원 정도 하는
중고 키보드를 구입해 록 음악을 들으며 '부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키보드를 내리치는 그 순간 짜릿함과 함께 스트레스가 멀리 날아가기 때문"이란다..
술, 노래방. 이게 전부라고? 천만의 말씀. 오늘도 저마다 특이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북과 심벌즈는 물론 새우젓 통, 염료통, 심지어 양은냄비까지….
주부 이정희(49) 씨가 매주 두 번씩 이들을 두들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6년 전 이 씨는 어머니를 여의고 2년간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네 아줌마들과 새우젓 통을 뒤집어 놓고 두들기기 시작하다 '잠실6동 주부 난타'
클럽을 조직했다. 땀이 흥건할 정도로 신나게 두들기면서 우울증을 극복한 것은
물론이고 삶에 대한 의지도 생겨났다는 것.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아들, 트집 잡는
남편…. 자연스레 이 씨의 손엔 장구채가 쥐어져 있다. "격하게 풀어야 제 맛"이라는
사람들. 이들은 깨뜨리고, 부수며 '화(火)'를 다스린다. 공예가인 김진일(44) 씨의
스트레스 해소 도구는 바로 새총. 하루 종일 혼자 공예품을 만들다 우울증에 걸린
김 씨는 새총으로 풍선을 터뜨리는 것에 쾌감을 느낀 것. "한 곳에 집중해 무엇을
맞히는 것이 짜릿하다"는 김 씨는 '한국 새총 연구회'란 동호회까지 운영하고 있다.
괴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 소리 지르기 동호회 '고성파' 회원인 직장인
서윤희(31·여) 씨는 회원들과 함께 한적한 곳을 찾아가 '악' 소리를 지른다.
보통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대상이지만 최근에는 빨리 시집가라는 어머니의
과격한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회계사 안재덕(가명·37) 씨가 눈물
흘리기에 열을 올린 것은 울음치료(일명 눈물 세러피)를 받기 시작하면서다.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그는 '이혼남'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다 우연히
한 명상원의 울음치료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2∼3시간 울고
오는 것. 안 씨는 "울다 보면 내 몸 안의 찌꺼기가 흘러 나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매달 1박 2일로 강원 원주시에서 울음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피라밋 명상원'의
윤석호 원장은 "한 번에 평균 30∼50명이 울음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우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울음치료 동호회 '스트레스의 숲에서 눈물을 만나다'
운영자 설권환(41) 씨는 "극적인 울음을 위해 먼저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고 그 후
조명을 어둡게 하고 슬픈 뉴에이지 음악이나 '아빠', '엄마' 단어가 들어간 동요를
튼다"고 말했다. 호흡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호흡 세러피'도 있다. 경희대 '화병
클리닉'에는 중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호흡으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사람들이 찾고
있다. 김종우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는 "들숨보다 날숨을 길게 하며 호흡해
동적이거나 정적이거나. 극과 극의 다양한 스트레스 풀기는 이제 개인의
독특한 취향이 아니다. 전상진(사회학) 서강대 교수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자신의
'캐릭터'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해소법이 하나의 놀이가
된 '펀트레스'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마케팅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인기 상품 '뉴 쇼킹 감전 볼펜'은 펜의 윗부분에서 전기가 흘러나와 직장
상사를 괴롭힐 수 있는 아이템이다. '폐차 부수기', '모니터 부수기' 같은 인터넷
플래시 게임이나 상사의 이름과 사진을 입력해 각종 고문을 할 수 있는 휴대전화기
게임 등도 인기다. 전문가들은 극과 극의 해소법에 대해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억압된 정서를 단기간 내에 푸는 '정서 대처법'이라고 분석했다. 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관리한다는 개념으로 다양한 방법을 익히고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펀트레스가 도리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상진 교수는 "남들보다 더 나은 스트레스 해소법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결국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단기 해소에 익숙
하다 보면 그 행위에 중독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박주언 한국 직장인 스트레스
지원 프로그램(EAP)협회 부회장은 "스트레스를 하나의 기회로 삼고 적극적으로 대처
하는 '지적 대처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동아닷컴]'건 강 > 몸을 깨우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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