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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허물어진 우리 석탑 복원에 열정 쏟은 일본인쉼 터/잠깐 쉬며.. 2011. 8. 9. 20:09
1926년 조선총독부가 발굴 조사한 신라시대의 한 적석목곽분에는 서봉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는 그해 10월 발굴 현장을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방문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서봉총의 ‘서(瑞)’가 스웨덴의 한자 표기 첫 글자다.
그해 9월 일본에 먼저 들른 그를 경주 발굴 현장까지 안내한 이는 고고학자이며
교토제국대학 총장이던 하마다 세이류였다. 그때 교토제국대학 공학부 건축학
교실 조수인 37세의 ‘노세 우시조‘도 수행단과 동행했다. 노세에게는 이 방문이
일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메이지 22년인 1889년 교토에서 태어난 노세는
자산가인 아버지에게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는다. 제력이 만만치 않았던 그는
경주방문을 계기로 조선의 문화유산에 매료되어 사비까지 털어 한동안 조선의
각지를 뒤지고 연구하는 생활을 계속한다. 1926년 경주 방문 이래 1931년까지
모두 10차례 조선을 찾아 유적 견학과 발굴조사, 그리고 문화재 복원을 벌였다.
한국에 십이지신상의 중요성을 가장 일찍 감지했으며 그와 관련한 선구적인
업적을 낸 중요한 연구자로 꼽힌다. 노세는 경주지역의 신라시대 십이지신상과
개성지역의 고려시대 십이지신상 연구에 몰두한다. 나아가 유적 발굴조사도
병행한다. 1928년 11월에는 경주 원원사터를 답사하는 한편, 황복사터 석탑 기단
터를 발굴 조사했다. 이어 원원사터를 발굴조사하고 개성 왕릉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 1929년 10월에는 다시 고려왕릉과 화엄사 서탑을 조사해 원원사터에
대한 발굴을 속개한다. 이듬해 1월에는 원원사터를 실측 조사하고 성덕왕릉을
비롯한 경주지역 신라시대 왕릉의 십이지신상을 조사하는 등 1931년 말까지
조선에서의 문화재 조사 행적은 계속된다. 그가 남긴 유리건판 사진과 관련 도면을
발굴해 정리한 그의 행적을 보면 동탑과 서탑의 쌍탑이었던 원원사 석탑 발굴조사와
복원에 바친 그이 열정은 우리를 숙연케 할 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 두 석탑은 조선
말기에 완전히 붕괴된 이후 각종 석탑 부재가 나뒹굴과 있는 상태였다. 이를 모두
수습하고 측량하는 한편 발굴조사를 통해 기단 구조를 확인한 그는 어느 부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건축 시기가 비슷한 다른 신라시대 석탑을 참고자료로 삼아 일일이
뜯어 맞췄다. 그의 노력은 마침내 1931년에 두 석탑을 완전히 복원하는 일로 대단원을
고했다. 노세가 남긴 한국 문화재 관련 각종 사진은 현재 일본 나라시의 문화재 관련
전문 사진회사인 아스카엔에 약 2천500장의 유리건판으로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 부산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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