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참을 수 없는 식욕의 무거움
진한 캐러멜 시럽을 듬뿍 올린 바삭하고도 고소한 시나몬 롤이 눈앞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참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운 버터에 시나몬의 풍미가 더해진 향기가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지럽힌다. 바삭하면서도 달콤한 겉면은 아마 혀에 닿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리고,
말랑한 속살의 쫄깃함만 남을 것이다. 이 유혹적인 음식 앞에 방금 전까지 위장을 꽉 채울
만큼 저녁 식사를 하고 왔다는 사실은 이미 뇌의 저편으로 휙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입에 넣는다.
일단, 한입 물어 씹고 나면 혀끝에서 폭발적인 만족감이 느껴진다. 순식간에 하나, 정신을
차려보니 두 개를 해치웠다. 입 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위장은 곧 찢어질 것 같다는
불편감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패배감. 며칠 전 측정한 인바디의 체지방
수치를 떠올리며 앞으로 몸속에서 일어날 일을 가늠해본다. 위장의 음식물이 잘게 분해되어
혈액 속을 떠다니다가 이미 볼록하게 자리 잡힌 옆구리 살에 착 들러붙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내장에 붙어 딱딱한 지방 덩어리로 변하겠지. 어쩐지 갑자기 허리가 2 센티미터쯤
더 두루뭉술해진 것 같은 기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트레드밀 위를 달린다. 손바닥만한
시나몬 롤에 굴복당한 패잔병의 마음으로 트레드밀을 뛰고 있으려니 의구심이 밀려온다.
어째서, 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또 먹었을까? 피브로 한의원의 오충선 원장은 이 같은
과식 행동은 습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배가 부를 때까지, 만족감을 넘어 불쾌감이
들 때까지 실컷 먹는 행동은 생명 활동을 위한 섭식 행위라기보다는 욕구 충족을 위한
심리적인 보상 행위에 가깝다는 것이다.
♣ 채식 과식하는 사람 봤어?
과식은 필연적으로 자극적인 음식과 관련된다. 누구도 채소를 과식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음식을 찾고, 그 음식은
대부분 고지방, 고열량 음식이기 때문에 문제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가 오후쯤
기분 전환을 위해 뜨거운 카페 모카를 마시거나 달콤한 초콜릿 쿠키를 집어 드는 것이
그렇다. 하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원고가 막힐 때마다 에디터의
손은 저절로 키세스 초콜릿의 포장을 벗기고 있으니 말이다. 고당분, 고지방 음식을
먹을 때 만들어지는 오피오이드는 자극을 주는 효과 말고도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여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오피오이드를 만들어내는 쾌감 중추는 특히 소금, 지방, 설탕에 반응해
활성화된다. 짭짤하면서 달콤하고, 그리고 부드러운 맛의 음식은 배고픔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탐닉하게 한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계속 입 속에 음식을 집어넣게 만드는
것은 진짜 배고픔이라기보다는 자극, 혹은 그 자극에 대한 기대다. 프링글스의 ‘한번
열면 멈출 수 없어’라는 카피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말씀. <나는 왜 과식하는가>의
저자 브라이언 완싱크는 좀 더 원초적으로 달콤한 음식의 유혹에 대해 설명한다.
원래부터 우리 몸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식과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지방을 먹어 칼로리를 비축했고 불안정한 식량 수급 문제를 해결
했다. 소금은 수분을 보존해 탈수 증상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바로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는 설탕은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의 얘기다.
♣ 과식 권하는 사회 '이런 걸 거부하는 건 죄악이야'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리는 달콤하고도 차가운 티라미스를 푹푹 떠 넣으며 P가
일갈한다. 물론, 이미 스테이크 한 접시와 연어 샐러드, 식전 빵까지 모두 해치운 뒤다.
스테이크의 마지막 조각을 씹어 삼키면서 더 이상은 못 먹는다는 선언을 했지만,
초콜릿 파우더가 소복이 올려진 폭신폭신한 티라미스가 서빙 되어 오자 또다시 스푼을
들고 말았다. 먹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의 유혹적인 음식은 도처에 있다. 이럴 때면
유일한 간식이 강냉이와 고구마였다는 그때 그 시절의 빈약한 식량 사정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적어도 다이어트가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테니. 아니, 다이어트가 필요할
만큼 과잉 영양 섭취가 가능하지도 않았을 테니. 여러 모로 비만은, 그리고 과식은
현대병이다. 음식 산업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과식 가능성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감자를 쪄 먹는 것이 다였던 시대에서 이제는 감자를 튀기고,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치즈까지 얹는 시대인 것이다! 끔찍하고, 행복하다. <과식의 종말>에서 데이비드 A
케슬러가 지적하듯 대부분의 식품 회사들은 설탕 위에 지방을 얹고, 지방 위에 소금을
얹는 방식으로, 더 많은 감각 자극을 주는 정밀한 음식을 가공해낸다. 그리고 그 기술은
점점 진화한다. 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에도 고민하고, 음식의 유혹에
대해 점점 힘들어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과식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시스템의 문제다.
♣ 어떻게 하면 과식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음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고, 과식으로부터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고 해도 도처에서 등장하는 음식의 유혹 앞에서
초연하기는 어렵다. 콜라 광고를 보면 콜라가 당긴다. 맛과 냄새와 온도와 톡 쏘는 감각은
이미 우리 혀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허무하게도 이토록 단순한 자극, 순간적인
압력에 굴복하고 만다. 딱 한 번만이라고 합리화해보지만 이 예외는 너무 자주 발생한다.
순간의 압력을 물리칠 만큼 강력한 것? 딱 하나 있다. 바로 ‘습관’이다. 무엇보다 콜라
광고 같은 외부 신호가 아니라, 배가 고픈지, 그렇지 않은지와 같은 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이 중요하다. 비만 전문가 김상만 교수는 자신의 저서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마라>에서 진정한 배고픔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왠지 허전해서, 맛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혈당으로 배고픔을 느끼고 나서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습관은
단시간 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몸은 결핍되었다고 느끼면 대상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얄궂은 성질을 갖고 있다. 음식이 모자라다고 생각할수록 음식 생각은 더욱 간절해
진다. 하지만 100kcal 정도 줄이는 것은 괜찮다. 몸이 눈치를 채고 갈망의 신호를 보낼
만큼 많은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에비스 나무 병원 외과의 임정택 전문의는 6개월 정도
꾸준히 식사량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충고한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도록 하루에 100kcal 정도씩만 줄여가는 식이다. 이렇게 느리게 형성된 습관은,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당신을 구제해줄 믿음직한 구원자가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과식이라는 욕망의 괴물에게
쿨하게 이별 멘트를 던져보자. “나, 지금 배 안고프거든?”
'건 강 > 건강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식으로 살아나는 내 몸 (0) 2011.08.14 병도 고칠 수 있는 좋은 물 (0) 2011.07.31 병을 예방하는 생활 습관들 (0) 2011.07.21 피임에 관한 오해와 진실 및 응급 피임법 (0) 2011.07.19 性에 숨어 있는 과학 (0) 201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