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한시(한국)

이시의 시

산들바람5866 2009. 4. 2. 19:40

뎨 가는 뎌 샤공아 배 잡고 내 말 들어

順風 만난 후의 가더라 아니가랴

於思臥 中流에 遇風波하면 업더딜가 하노라

                          ~이시(李蒔;1569~1636)~

<해설>

저기 있는 저 사공아, 배를 멈추고 내 말을 들어라 순풍을 만난 뒤에 가도

괜찮지 않겠느냐, 가다가 중간에서 풍파를 만나 엎어질까 염려스럽구나.


◈ 배경

이시는 호는 성우당(善迂堂)인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쌍계(雙溪)에 거주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능창군이 죽게 되자 그 생살(生殺)의 권한을 쥐게 된 것은

당시의 병조판서 유희분(柳希奮)이었다. 유희분은 유자신(柳自新)의 아들로서 광해

 

주의 처남이었다. 자는 형백(亨伯)인데 선조 23년 생원이 되고 동 30년 문과에 급

제했다. 이보다 앞서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희분은 세조대왕의 능인

광능참봉(光陵參奉)이었다. 그래서 난리가 일어나자 세조대왕의 영정(影幀)을 모시

 

고 의주까지 달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왜군이 사방에 길을 막고 있으므로 철원 근

방에서 왜군의 유탄을 맞았다. 이때 극진히 간호해 준 것이 나중에 첩이 된 안악

(安岳)기생 매화(梅花)였다. 그들 역시 피난 가다가 희분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능양군응ㄴ 동생 능창을 구하고자 집에 있는 패물을 희분의 첩 매화에게 갖다 주

었으며, 희분을 만나고자 했다. 그러나 희분은 핑계를 대고 좀체로 만나주지 않았

다. 그러던 어느 날 능양군은 또 희분의 집에 가서 주인을 찾았다. 그랬더니 희분

 

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하고 능양군은 그대로 그곳

에 있었다. 그제야 청직이도 딱했던지 “대감께서는 서강(西江) 한창군(漢昌君)의 별

장에 가시고 정말 아니 계십니다. 급하시면 그리로 가보십시오.“ 한창군은 희분의

 

매부인 조국필(趙國弼)을 말한다. 능양군은 문안에서 서강까지 터벅터벅 걸어갔다.

희분은 이때 조국필과 술을 마시며 기생에게 노래를 시키는 등 질탕하니 놀고 있

었다. 그러다가 능양군이 찾아왔다는 하인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계신다

 

고 그래라“ 희분은 버럭 소리를 질었다. 국필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형백, 능양은

왕손인데 대접상 나가 만나보는 게 인사가 아니오, 그리고 웬만하면 그 아우를 살

려 주게 그려“라고 말했으나 희분은 딱 거절했다. 국필은 자기가 희분 대신 사당

 

에 나가서 능양군을 만났다. “아무래도 문창(희분의 관작명)이 술이 취하여 대감을

만나지 ht할 것 같습니다.“하고 좋은 말로 위로하였다. 능양은 ”아아, 내아우가 끝

내 죽는구나!“하고 탄식했다.